유월의 독서 / 박준
그림자가
먼저 달려드는
산자락 아래 집에는
대낮에도
불을 끄지 못하는
여자가 살고
그 여자의 눈 밑에 난
작고 새카만 점에서
나도 한 일 년은 살았다
여럿이 같이 앉아
울 수도 있을
너른 마당이 있던 집
나는 그곳에서
유월이 오도록
꽃잎 같은 책장만 넘겼다
침략과 주름과 유목과 노을의
페이지마다 침을 묻혔다
저녁이 되면
그 집의 불빛은
여자의 눈 밑 점처럼 돋아나고
새로 자란 명아주 잎들 위로
웃비가 내리다 가기도 했다
먼 능선 위를 나는 새들도
제 눈 속에 가득 찬 물기들을
그 빛을 보며 말려갔겠다
책장을 덮어도
눈이 자꾸 부시던
유월이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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![최형심 시인](https://naewoeilbo.org/mir/news/photo/202406/975246_776384_4747.png)
긴 “그림자”를 드리우는 “산자락 아래” 위치한 집은 낮에도 어두컴컴해서 불을 밝혀야 했습니다. 화자는 그 집에서 사연 많은 여인 곁에 머물며 유월을 보냈습니다. 유월은 봄에서 여름으로 접어드는 시기이자 세상 모든 것들이 절정을 향해 피어나기 시작하는 아름다운 계절입니다. 갓 성년에 접어든 청춘에 비유될 수 있는 시기이지요. 그 시절의 독서는 읽는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 속을 살다 나오게 됩니다. 화자는 “그 집의 불빛”이 “여자의 눈 밑 점처럼 돋아”날 때까지 “유목과 노을의/ 페이지마다 침을” 묻혀가며 읽었다고 고백합니다. 눈 밑에 점을 가진 여자 주인공이 누구일까 궁금해집니다.